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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스에 료코의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 감상평

patapata 2013. 2. 1. 10:08


나에게 불의 전차를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출연
김응수
기간
2013.01.30(수) ~ 2013.02.03(일)
가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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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완소하는 히로스에 료코의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이 한창 공연중입니다. 작년 이 공연이 도쿄에서 초연되었을 때 부터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제 베프가 이 공연의 프로그램북 제작을 담당하는 바람에 더더욱 관심이 없을 수 없던 작품이었죠. (제 베프는 사인 한장만 받아달라는 제 구걸을 뒤로 하고 료코와 1대1 인터뷰를 하는 만행을.. ㅠㅠ 만행의 주인공은 공식프로그램북 맨 뒤에 나옵니다 ㅎㅎ)


저는 이번 공연을 VIP석, R석, S석 등 다양한 곳에서 볼 수 있도록 예매했고 료코를 중심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료코 중심의 감상평일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세요. ^^


먼저 이 연극은 굉장히 긴 연극입니다. 7시30분에 시작하면 11시15분에 끝납니다. 공식 발표된 시간이 210분. 세시간반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인터미션 15분이 있기 때문에 3시간45분이 걸리는거죠. 인터미션은 매우 정확하게 절반 부분에 있습니다. 제가 보니 9시15분쯤 인터미션을 시작해서 9시반에 후반부가 시작되더군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들어서면 이미 무대의 막은 열려있고 배우들이 무대 위 동네 어귀를 재현한 세트에서 마치 원래 그 자리에서 그렇게 놀고 있었던 것 처럼 수다를 떨며 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사당패가 나타나며 자연스럽게 공연이 시작되죠. 인터미션 이후에도 마찬가지인데, 공연 중간중간의 간격을 남사당패의 공연으로 연결해 내는 부분은 꽤 마음에 들더군요.  


공연의 내용은 1924년 경성 근처 지방도시에 온 남사당패의 꼭두쇠 차승원과 일본인이지만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쿠사나기 츠요시(초난강)를 중심으로 그들의 주변사람들이 겪는 한일관계의 현실과 사랑을 다뤘습니다. 처음 자료만 보고서는 상당히 비장한 내용일거라 생각했지만 공연은 생각보다 상당히 유쾌합니다. 중간 중간 웃음이 터지는 부분도 많고, 심각한 장면에서도 깨알같이 숨어있는 유머코드가 많아요. 특히 히로스에 료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귀엽고 사랑스럽고 깨물어주고 싶은 캐릭터 마츠시로를 연기하는데, 1+1은 귀요미에 필적할 귀염작렬 동작이 3번 정도 등장하니 혹 공연을 보시는 분은 꼭 즐겨주세요. ^^


이 공연은 정의신 작,연출인데요. 재일교포가 만든 작품이긴 하지만 극의 내용은 일본의 우익들이 보면 상당히 기분 나빠할 내용이 가득 담겨 있어요. 일제시대 일본의 수탈과 일본인의 조선인 차별에 대한 내용이 매우 비판적으로 다뤄집니다. 일본 최고 클래스의 배우인 쿠사나기 츠요시, 히로스에 료코, 카가와 데루유키 등이 출연했는데 신변에 문제가 없었는지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일본에서 40회 정도 공연을 했다고 하는데 이런 작품에 선뜻 출연한 배우들의 의지가 결연하게 느껴질 정도더군요. 


단지 이 공연에서 제가 좀 아쉬웠던 것은 극적 장치를 통해 3시간반의 시간을 잘 끌고 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너무 길다는 것, 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세밀한 극의 구성보다는 잔잔한 에피소드와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전달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국내 공연의 경우 관객의 대부분은 공연의 내용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쟈니즈 멤버와 히로스에 료코의 국내 첫 무대 데뷔같은 외적인 부분에 맞춰져 있어 매우 성공적인 관객동원을 하고 있지만 공연 자체의 완성도는 그렇게 높게 평가하기 힘들다는게 제 생각이예요.


이 연극에 깔려 있는 한가지 코드는 동성애 코드입니다. 남사당패 내의 묘한 성적 관계도 그렇지만 차승원과 쿠사나기 츠요시의 관계도 러브라인으로 해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실제 극중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고요) 작가가 작정하고 넣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죠. 


차승원은 처음에 보고 '차승원 맞아?'하는 생각이 들 만큼 너무 야위어서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첫 연극이라고 하기엔 놀랄 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죠. 발성도 출연 배우들 중에 가장 좋은 편에 속하고 상모돌리기와 외줄타기 등 난이도 있는 장면들도 소화해 냅니다. 정말 대단했어요.


반면 쿠사나기 츠요시는 연기도, 발성도 아쉽습니다. 물론 종합 엔터테이너의 한계는 있겠지만 어제 공연에서는 첫날 공연의 여파로 목이 너무 쉬어서 부담스럽더군요. 똑같이 격한 감정을 토해내는 연기를 했던 다른 배우들이 여느때와 다름없는 연기를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쿠사나기 츠요시는 목 관리에 정성을 기울여야 남은 네번의 공연을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처럼 보입니다.


히로스에 료코는 이제 어느덧 데뷔 20년을 향해 가고 있는데, 이제 정말 배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료코 특유의 표정 연기는 여전하지만 연극 무대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연기력을 보여 주죠. 사실 출연 분량도 차승원, 쿠사나기 츠요시에 비해 절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료코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짧을까 걱정했던 제 생각은 그냥 기우였고 정말 행복했어요. ^^ 또 료코가 없었다면 이 연극이 얼마나 밋밋했을까 싶을 정도로 극의 재미에 중요한 역할을 해 줍니다.  


커튼 콜 때 진정 환호의 찬사를 보내는 관객들의 반응에 뜨겁게 호응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게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란 생각이 절로 들어 기뻤습니다. 료코에게 선물을 전달할 수 있는 선물 박스도 있고 치어플을 갖고 와서 커튼콜 때 흔드는 분들도 있었는데 제가 준비하지 못해서 부끄러웠어요. 


료코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이번이 두번째 방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더 왔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첫번째는 영화 '제로포인트' 촬영 때였는데, '제로포인트'의 일본 장면 중 일부가 놀랍게도 부천에서 촬영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료코가 한국에서 영화를 찍었는데 저도 몰랐을 정도로 조용히 촬영만 하고 갔습니다. (아쉽!) 그리고 이번 공연이 두번째인데 료코는 한국에서 본인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료코가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2000년대 초에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더 뜨거운 반응이었을텐데 아쉽죠? 정말 뜨겁게 활동했던 료코 팬카페들도 이번 공연에도 조용한 거 보면 많이 아쉽네요. 


국립극장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사 전달에 문제를 보입니다. 한국말 대사는 일본어로, 일본어 대사는 한국어로 자막이 나오는데 오히려 일본어 대사가 전달력이 높아요. (자막을 보면 되니까) 일부 배우들의 발성에도 아쉬운 점이 있지만 공연장의 특성 상 그래도 대사가 잘 퍼져나가야 하지 않나 싶은데 앞에서 8번째 줄 중앙에서도 잘 안들리는 대사가 꽤 되더군요. 기본적으로 큰 공연장이라 앞에서 8번째 줄에서도 배우들의 얼굴 표정을 읽기란 쉽지 않습니다. 앞에서 3,4번째 줄 정도 되어야 표정을 살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좋은 자리를 구입하는 건 쉽지 않지만 혹 공연을 보실 분들은 참고하시고요. 공연이 끝난 뒤 동대입구와 동대문으로 가는 국립극장 셔틀버스는 매우 붐비고 준비된 2대의 셔틀을 놓치면 20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합니다. 끝나면 11시 20분 정도라 전철 시간도 간당간당 하니 귀갓길 대책은 따로 세우시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