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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쉬운 안철수원장 측의 기자회견 시간 결정

patapata 2012. 9. 7. 00:08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끄적일 이슈가 하나 생겼네요.

 

저는 아직 이번 대선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제 입장에서 누군가를 지지할 것이고 꼭 투표하겠죠.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하는 입장에서, 전략적으로 안철수원장이 오늘(2012년 9월 6일) '새누리당 측 대선불출마 종용'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의 시간을 정하는데 어떤 아쉬움이 있었는지 오늘 간단하게 적어보고자 합니다.

 

이건 제가 안철수원장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정치상황과 안철수원장 쪽 입장을 고려해서 적는 것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안철수원장에게 감정이입을 한 상태입니다. :)

 

오늘(2012년 9월 6일 목요일) 오후 3시 안철수원장 측 금태섭 변호사가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상할 것이 없는 정상적인 시간선정, 장소선정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정국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점이 많은 결정이었습니다.

 

현재 미디어 환경은 결코 안철수원장쪽에 유리하지 않습니다. 보수 미디어가 시장의 주류입니다. 최소한 사안을 중립적으로 다룰 것으로 기대되는 매체의 수도 제한적이며 이 매체들의 영향력의 합 또한 주류 미디어에 비해 초라한 수준입니다. 특히 방송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의 방송사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할 상황이죠. 이런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태섭 변호사의 기자회견 시간은 오후 3시였습니다.
그나마 기존 미디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방송3사 메인뉴스 시간을 5~6시간이나 앞둔 상황이었고, 기자회견 이후 새누리당 측의 반박 준비가 진행되기에 아주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임시국회가 열리고 있어 새누리당 수뇌부가 여의도에 모여 있었고, 기자회견에 대한 대응논리가 당대표에게 문자로 전달됐으며(사진으로 보도됐죠) 바로 협박을 한 당사자로 언급된 정준길 공보위원이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심지어 보직사퇴까지 한 시점은 8시 뉴스가 방송되기도 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새누리당의 대응이 SBS8뉴스 방송 전에 마무리됐다는 겁니다.

 

기자회견을 할 때 협박을 한 당사자로 지목된 사람이 현직 대선캠프 공보위원이었는데, 처음 메인 뉴스에 나갈때는 이미 전 공보위원이 된거죠.


결국 오늘 오후 5시경부터 포탈을 포함한 방송 뉴스는 안철수 측과 박근혜 측의 공방 형태로 사건을 다루기 시작했고, 기자회견 내용도 같은 비중으로 다뤘습니다.
YTN의 경우엔 국민대 목진휴교수를 전화로 출연시켜, '일개 공보위원이 유력 대선주자의 사퇴를 협박했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며 금태섭변호사의 주장을 일축하기도 했죠.

 

저는 그래서 기자회견 시간이 무척 아쉬움이 남습니다.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었다면, 저녁 무렵 진행해서 상대진영의 반박 시간을 주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래야 최소 하룻밤 정도는 이슈를 선점할 수 있습니다. 메인뉴스에서 안철수 원장 측의 주장만 보도되고, 새누리당의 반박은 오늘 심야 혹은 내일 오전에 보도되도록 했었어야 이번 주장의 무게감이 극대화 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포탈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지금 이런 타이밍이 왜 중요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안철수원장이 이런 폭로를 통해 설득해야 하는 대상을 생각하면 중요합니다.

지금 표심이 바뀔 수 있는 계층은 제한적이고, 이들은 방송 메인뉴스와 신문을 통해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계층입니다. 또 뉴스를 직접 소비하지 않더라도 기존 미디어의 반응을 2차적으로 전달받으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주류 미디어들은 '공방전'으로 '경마중계식'보도를 하고 있고 이래서는 새누리당 황우여대표가 전달받은 문자처럼 '의혹의 사실여부'로 관심의 축이 이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까요.

 

저는 사실, 금태섭 변호사의 '긴급기자회견'이라는 폭로 방식 자체도 아쉽습니다.

새로운 소통을 할 수 있었는데, '기자회견'이란 형식을 통해 '기존 미디어의 틀'에 이번 이슈를 넣어버렸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이런 사실을 밝히고 미디어 접촉은 오히려 그 뒤에 했었어야 합니다. '진실의 친구들'이란 SNS 계정을 통해 관련 내용을 거의 동시에 밝히긴 했지만 '기자회견'이라는 포맷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죽어버렸습니다.

 

말이 길어지네요.

 

정리하면, 오늘 기자회견 시간은 최소 저녁 6~7시 이후여야 안철수원장에게 가장 유리했다고 생각합니다.
안철수원장의 긴급기자회견 정도면 공중파나 YTN이 충분히 중계차를 보낼 수 있는 수준입니다.
만약 취재편의가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프레스센터가 아니라 다른 장소를 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저녁 메인뉴스는 새누리당의 반박을 제대로 담아내기 힘들었을 것이고,
정준길 공보위원의 반박 기자회견이 열려도 심야뉴스에나 언급됐을 것이고,
새누리당 수뇌부도 국회 밖에 있다 급거 모이거나 전화로 대응해야 했었을 것이고,
그러면 적어도 오늘 퇴근길과 술자리에서 이슈로 선점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안철수원장 쪽은 공식적으로 캠프가 구성된 상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대변인이 있지만, 이런 디테일을 챙길 여력이 없는 듯 합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안철수원장이 쓸 수 있는 매우 큰 카드였는데, 만루홈런이 될 공이 펜스를 맞고 나오면서 넋놓고 있던 2루주자는 홈에서 아웃된 그런 아주 아주 아쉬운 상황입니다.

 

안철수원장이 본의든 아니든 대선에 출마하게 된다면, 캠프의 구성원들을 어떻게 꾸릴지 우려가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